심리학

심리학의 주요학자 (3)

미이킹 2022. 11. 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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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우리에게 익숙한 진화론에만 관련이 있는 학자가 아니었네요. 하나씩 적어가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는 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찰스 다윈의 학창 시절부터 다시 천천히 알아보려고 해요.





찰스 다윈의 학창 시절



#. 청소년기



그는 할아버지 에라스뮈스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할아버지가 쓴 책들을 읽으면서 생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817년부터 1825년까지 다윈은 초중등 교육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다윈은 교육을 지식전수로 잘못 이해하여 학생만의 좋은 점들을 존중하고 키워주지 않는 잘못된 교육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여, 교사에게서 '항상 멍하게 있는 녀석'이라는 심한 욕을 듣기도 했습니다. 1818년, 다윈은 슈루즈베리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가 과학에 큰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찰스 다윈은 형인 이래즈머스 다윈과 함께 학교 정원에 화학 실험실까지 마련했습니다.



#. 의대 진학



의사였던 아버지 로버트 다윈은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고, 그를 의대로 진학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찰스는 의학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청소년기 때부터 곤충채집과 동물 관찰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별로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다윈은 16세 때인 1825년에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 슬하를 떠나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의학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피를 봐야 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꼈고, 의학보다는 곤충채집 같은 경험에 입각한 자연계의 다양성을 더 좋아했습니다. 더구나 마취학이 없었기 때문에 수술이 환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19세기 유럽 의학의 인도주의에 어긋나는 모습과 지나치게 학문에 치우친 의대 교수들의 지루한 강의에 친숙해지지 못하고, 결국 1827년에 에든버러 대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 박물학과의 만남



흑인 해방 노예 존 에드먼즈 턴에서 동물의 박제 제작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때 배운 박제제작법은 나중에 비글호의 항해에 참여해 생물 표본을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2학년 때에는 풀리니 협회(급진적인 유물론에 매료된 박물학 학생들의 클럽, 고대 로마의 박물학자 대 플리니우스와 연관)에 소속해, 해양 생물의 관찰 등에 종사했습니다. 다윈은 로버트 에드먼드 그랜트의 해양 무척추동물의 생활환경과 해부학의 연구를 도왔습니다. 어느 날, 그랜트는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의 진화 사상을 칭찬했습니다. 다윈은 놀랐지만, 그 무렵 할아버지의 책을 읽어 유사한 개념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 생각이 논쟁적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교의 박물학 수업은 지질학의 수성론과 화성론 논쟁 등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지루했습니다. 또 식물의 분류를 배워,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많은 식물 수집을 자랑한 에든버러 대학교 박물관에서 연구를 도왔습니다.



#. 신학과 진학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과



1827년 아들이 성공회 신부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흥미에 따라 식물학자 헨 슬로와 지질학자 아담 시지윅 교수의 지도를 받았으며 1831년에 졸업하였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신학부 부친의 권유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자, 아버지는 다윈을 성공회 신부로 만들기 위해서 1827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넣어 신학, 고전, 수학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다윈은 성공회 신부가 되면 성공회 미사 집전, 성서와 신학 연구 등의 교회 일을 하고 남는 시간의 대부분을 박물학에 쏟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찰스 다윈의 관심은 신학이 아닌 박물학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도 육촌 윌리엄 다윈 폭스와 함께 필수는 아니었던 박물학이나 곤충 채집에 심취했습니다. 폭스의 소개로 성직자이자, 박물학자인 존 스티븐스 헨슬로와 만나 친한 친구이자, 제자가 되었습니다. 다윈은 학내에서 헨슬로가 만든 정원을 둘이서 자주 산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에 헨슬로와의 만남에 대해서, 자신의 연구에 가장 강한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또 성직자이면서 지질학자였던 아담 시지윅에게 배워, 층서학에 범상치 않은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자연신학



동시에 당시 다윈은 신학의 권위자인 윌리엄 레일리의 《자연신학》을 읽었고, 모든 생물은 하느님이 천지창조의 시점에서 완벽한 형태로 창조했다고 하는 설을 납득하고 믿었습니다. 자연철학의 목적은 관찰을 기반으로 한 귀납적 추론에 의해서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기술한 존 허 셸의 새로운 책이나, 알렉산더 훔볼트의 과학적 탐험 여행 등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들의 불타는 열의에 자극되어 열대지방에서 박물학을 배우기 위해서 졸업한 뒤 동년배들과 테네리페섬에 여행 갈 계획을 세우며, 그 준비 단계로 시지윅의 웨일스 지질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여행



이때의 그의 취미는 음악이나 후에 잔인하다며 그만둔 사냥이었습니다. 입학을 했던 1827년 여름에는 조시와 2세와 그 딸이자, 미래의 아내가 될 엠마 웨지우드와 유럽 대륙을 여행하고 파리에 몇 주간 머물렀습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유럽 대륙 여행이 되었습니다.



#.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



1831년에 최고 성적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과학 역사는 이 두 대학교 시절을 다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본인은 훗날 회고록에서 "학문으로서 대학교도 (에든버러 대학교도)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 그는 세계 일주를 하게 되는데, 이때 아버지 로버트의 반대가 극심하였으나, 에든버러 대학 재학시절의 은사인 존 스티븐스 헨슬로의 간곡한 설득으로 아버지 로버트는 아들의 세계 일주를 허용하였고, 이는 훗날 그의 생애는 물론 생물학계에도 족적을 남기게 되는 비글호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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